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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경험한 대한민국 남자라면 육탄십용사 이야기와 이 군가는 아마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특히 최전방이라면 그럴 확률이 더 높고. 내용은 그 이름이 말해주듯 그 어떤 엄호없이 81mm 박격포와 수류탄을 이어 만든 급조 폭탄을 들고 육탄으로 돌격해 고지의 북한군 토치카를 개발살내고 장렬하게 자폭했다는 용사들의 이야기다.(물론 자원해서 뽑은 특공대) 그들을 기리기 위하여 우리는 이렇게 군가도 만들고 부사관에게 주어지는 최고 영예도 '육탄십용사상'이다. 또 중앙대를 다니거나 그 동네 사는 사람이라면 '육탄십용사현충비'를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육탄십용사는 그만큼 아직도 우리 마음속에 영웅으로 자리잡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육탄10용사가 사실은 조작일 수 있다는 글을 보았다. 단정지을만한 사실은 아니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애국심이 끓어서인지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육탄십용사가 크게 거짓되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이런 육탄 돌격하면 또 빠뜨릴 수 없는 나라가 있으니 대일본제국육군大日本帝國陸軍이다. 물론 그 육군 항공대와 해군 소속 비행사들도 유명하다. 가미카제라는, 인명을 연료로 사용한 공격은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일본 대본영도 이 가미카제를 매우 밀어줬으며, 조선인들로 하여금 일본군에 지원하게 하는 데도 이 가미카제를 써먹었다. 그리고 당시 최고의 문인이자 친일파였던 서정주와 대본영의 콜라보(...)로 나오게 된 시, 마쓰이 오장 송가松井 伍長 頌歌라는 걸작을 발표하게 하기에 이른다.

마쓰이 오장 송가


아아 레이테만은 어데런가......로 시작하는 이 시는 레이테 만 해전에서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들이받은 육군 항공대 오장 마쓰이 히데오를 말그대로 찬양頌하고 있다.(송가는 보내는 노래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찬양할 송자를 썼다.) 그런데 사실 이 마쓰이 히데오, 한국명 인재웅씨는 일제가 패망한 후 1946년 인천항을 통해 귀국한다. 미국 배에 꼬나박기는 커녕 항복했다가 하와이를 통해 귀국.. 1월 10일, 11일 당시에 발행된 동아일보를 통해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라는 게 참으로 큰 도움이 된다. 영미권은 산업화가 꽤나 오래 전에 되어서 그런지 산업화 이후 조밀하게 기록된 각종 기록과 언론 등이 인터넷으로 찾기 쉬웠는데 한국은 DB화라는게 거의 없다시피 해서 매우 불편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큰 기업이 이런 일을 앞장서서 하다니 고마울 따름이다.

아니 이야기가 잠깐 샜는데, 결국 이런 자폭이라는 것은 보통 적진에서 행해져서 진위를 가리기 힘든 때가 많기 때문에 진위를 가리기보다는 대충 덮어놓기만 하면 매우 영웅적 행동인 것은 맞으므로 선전 효과가 커서 이렇게 마구잡이로 선전에 동원되는 사례가 있었으니 무조건 조작이라고 의심하자는 것은 아니고 선전에 너무 감동하여서 이성적 사고를 스스로 마비시킬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글을 마치기 전에 우리의 육탄십용사와 그 이름과 행동 모두 매우 비슷하지만 당연히 절대 관련성은 없어야만 하는 일본 해군의 육탄삼용사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겠다. 



(좌측부터 에시타 타케지, 사쿠에 이노스케, 키타카와 죠오. 오사카 마이니치 신문 사진을 일본 웹에서 퍼왔다.)

에시타 타케지江下武二, 키타카와 죠오北三丞, 사쿠에 이노스케作江伊之助 세 명으로 구성된 육탄삼용사가 중화민국군이 구축한 철조망 방어선에 육탄으로 자폭해 철조망과 사라졌고 이에 감격한 전 일본 '육군'이 중국군을 무찌르고 상해에서 크게 이겼다 뭐 이런 것이다. 이 또한 우리의 육탄십용사와 마찬가지로 당장 신문사들에 대서특필되고 '아사히'와 '마이니치'는 육탄삼용사 추모곡 대회로 경쟁까지 했을 정도로 대단히 추앙받았다. 영미권에서는 Three human bombs..라는 다소 치욕적이지만 매우 솔직한 이름으로 보도되었으며, 영화도 만들어졌다. 우리의 육탄십용사와 판박이다.

그러나 이 쪽은 위의 마쓰이 오장과 같이 조작이였다고 한다. 사고사로 죽은 것이 포장되었다가 전후에 증언으로 거짓인 것이 판명난 것이다.

http://blog.hani.co.kr/chris/31741 이 글에서는(주제는 이게 아니지만) 2007년 5월 아사히에서 보도했다고 하는데 아사히는 검색 기간을 1년으로 제한해둬서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나는 1963년 발행된 경향신문으로 증거를 삼겠다. 제목은 "新闻(신문)의 뒤안길 (1) 美談誕生(미담탄생)". 63년도 시점에서 거짓으로 판명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면 2007년 5월에 나왔다는 사과 기사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아마 "공식적" 사과였지 않을까 한다.


우리가 이런 조작된 일제의 "용사들" 앞에서 우리의 육탄십용사는 당당하게 진정 용사들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면 크게 자신은 없다. 한쪽 면만 보면 의심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언젠가 통일이 된다면 그 진실이 밝혀지겠지. 그 때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우리의 육탄십용사를 기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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